
윤리의 심리 분석가... 에릭슨은 누구인가?
1. 에릭슨이 걸어온 길.
이 세기에 들어서서 두 해지나 덴마크인 부모 밑에서 1902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출생.
에릭슨이 3세 때 (새아버지) 유태인 소아과 의사인 홈부르거(theodore haomeburger)와 재혼.
에릭슨은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으나 고대사와 미술에서는 탁월한 모습을 보임.
학교를 졸업하자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1년간 유럽 여행함.
에릭슨은 방랑하는 예술가처럼 자신을 찾기 위해 유럽 일대를 유랑함.

25세 때인 1927년에 안나 프로이트가 설립한 어린이 연구소인 학교에 참여하게 됨.
1927년부터 1933년까지 안나 프로이트와 어그스트 예약혼의지도로 정신분석 훈련자격을 받아 훈련을 마침
1930년 첫 논문인 교육과 심리분석을 관련시켜 논문을 비엔나 심리 분석학회에서 발표
1933년 미국으로 이주한 에릭슨. 아동분석가로 개업
1936년부터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심리학 연구자로 일/소아과 의사인 양부가 원하던 의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결국 의과대학을 거치지 않은 채 어린이 심리 치료사가 된 셈.

그 후 3년간(1939) 예일대학교의 인간관계 연구소에서 초청-자아발전과 인류학적 연구에 관심.
바로 이때가 그의 인생에서 아동 발달에 대한 사회와 문화의 영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
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그의 이론을 공식화하기 위해 그는 미국 쑤우 인디언 아이들 그룹을 연구함. 이 아이들의 연구를 통해 그는 부모와 사회의 가치와 인격 성장을 연결시킬 수가 있었음.

에릭슨은 1939년 샌프란시스코로 자리를 옮겨 임상실무를 계속했고, 1942년에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 교수가 되었다. 1940년대에 그는 소론들을 발표했는데, 이 글들은 심리적 발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처음으로 밝힌 저서〈어린이 시기와 사회 Childhood and Society〉(1950)에 수록됨.

에릭슨은 1950년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요구한 충성서약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뒤 자리에서 물러나매사추세츠 스톡브리지의 오스틴 리그스 연구소를 세우고(1951), 어린이 심리치료를 계속하며 하버드대학교로 돌아가 인간발달교수로 강사 및 교수(1960~70)를 지냈고, 1970년부터는 명예교수로 재직했다.
1972년부터는 샌프란시스코의 마운트 자이온 병원의 정신과 수석 고문으로 있었음.
1994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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